[2023-03-24] 소설쓰고 앉아있는 삶

1. 근황

얼마전 회사에서 마음을 크게 다칠 일을 겪었다 충격에 온몸이 저릿저릿했다 나를 믿고 따른 직원들에게까지 상실감을 주었다는 자책에 괴로웠다 3개월이나 지났으니 이제 꽤 회복 되었다 믿었는데 도저히 예전처럼 느릿하게 사유하고 기록할 기운이 나지 않는다 누군가를 원망하는 것은 마음의 질환이라는 글을 본적이 있다 나는 아직도 그 대생을 증오하고 원망하고 있다 내 상처는 여전히 시뻘건 속살을 드러낸 채 후두둑 뜨거운 피를 떨어뜨리고 있다


2. 출간제의

겨우 비틀거리며 버티던 중 출판사들로부터 에세이 출간 제안을 받았다 너무 감사한 일이지만 우선 내 상태가 좋지 않기도 했고 예전부터 찍어내기식 출판 트렌드에 부정적이던터라 정중히 거절했다 요즘 일반인 책쓰기 강좌가 돈벌이가 되면서 일기장에나 남아야할 글들이 불필요하게 퍼블리싱되고있는 걸 느낀다 나마저 이 텍스트공해에 동참해선 안된다는 강박이 반사적으로 작동하였다 글은 궁극적으로 사람의 생각과 행동을 변화시켜야한다고 믿는다 문장 자체로 아름다워야한다 표현도 창의적이어야 할것이다 나따위가 그런 글을 쓸수 있을리가 없다


3. 출판시장

출퇴근길 차안에서 출간의 경제적 의미를 곱씹어봤다 직업정신을 살려 계산기를 뚜드렸다 우선 인세는 아무리 유명인이라해도 10%를 넘지 않는것 같다 초판인쇄가 500~ 3000부 사이라고 하니 운좋게 1쇄가 모두 팔린다면 (권당 1.6만원 적용) 80만원에서 480만원 정도가 작가에게 가는 보상이다 출간을 통해 작가타이틀을 획득, 이후 강연료 등으로 수익처를 확대하는 것이 공식처럼 여겨지는 것 같다 다만 요즘 사람들은 책을 잘 읽지(=사지) 않아 초판도 다 못파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한다 출판사 섭외담당자가 이미 인지도 있는 유명인사 혹은 인플루언서를 선호하는 것도 이해가 가는 대목이다


4. 종이책만 출간인가

“요즘 사람들은 예전만큼 책을 읽지않는다” 현대인들은 독서를 하지 않고 무엇을 하나? 넷플릭스, 유튜브를 시청하고 SNS세상에서 타인의 삶을 염탐한다 SNS플랫폼은 고도의 인지심리학자와 알고리즘개발자들의 지독한 A/B test를 통해 완성된다 어찌나 훌륭하게(?) 설계되었는지 한번 입장하면 앱을 닫고 나오기가 어렵고 머무는 동안 내내 도파민이 쏟아진다 유저는 뇌의 지시에 따라 좌우로 위아래로 엄지질을 멈추지 않는다 (디지털채널의 폐해를 애써 무시하면) 종이책, 유튜브 모두 컨텐츠를 기반으로 존재한다 다만 그 호흡이 길고 짧은지, 매체가 종이인지 영상인지에 따라 플랫폼이 달라질뿐 나는 유튜브나 인스타도 다변화된 출판의 한 갈래라고 생각한다


5. 생산할것인가 소비할것인가

플랫폼 생태계 내에서 누군가는 컨텐츠를 생산하고 다른 누군가는 열심히 그것을 소비한다 한옥으로 이사오기 전엔 나도 이런 분별이 흐릿했다 이 블로그, 특히 선유자관리인 인스타계정을 열어 한옥의 삶을 나누며 어떻게 전달(delivery)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며 경계가 선명해져갔다 나에게 많은 영감을 준 김경만 감독의 사진학개론은 똑같은 영상을 두세번씩 볼 정도로 몰입했었다 ‘컨텐츠 생산자’로서의 고민은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삶으로 나를 이끌었다 사람이 죽으면 이름을 남긴다고 했나 이름을 남긴다는 것은 ‘나의 이야기’를 세상 사람들이 기억한다는 것이다 ‘나의 이야기’를 많은 이들이 잘 기억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기록하고(생산하고) 다듬는 것이 삶을 의미있게 살아가는 방법이라 믿는다


6. 소설쓰고 앉아 있는 삶

나를 스쳐간 많은 (지금은 가까이 하지 않는 부류의) 사람들이 내가 허황된 목표를 선언할때마다 ”뜬구름 잡는 소리하네“, “소설쓰고 앉아있네”라고 근엄한 목소리로 타일렀다 때론 그런 시니컬에 위축 되기도 했다 역설적이게도 나는 실제 그들이 빈정거린 모습으로 살길 원하는 지도 모르겠다 퇴근후 혹은 주말 여유시간 온몸을 엄습하는 나태함과 타협하지 않고 꾸준히 공상하고 기록하는 삶 때때로 그 내용이 고통스럽고 괴로움에 몸부림치게 되는 것이라도... 보잘것없는 내 이야기가 컨텐츠가 되어 이 세상 누군가에게 읽혀지고 울림을 주고 또 기억 되었으면 한다 그리고 그 과정이 서서히 내 생계의 근간이 되어가길 소망한다 그것의 경제적 정의가 ‘작가’가 될지 ‘인플루언서’일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그냥 지금처럼 “소설쓰고 앉아있는 삶”을 멈추지 않으려 한다




댓글 1개:

  1. 와 그래도 부럽네요 출간"제의"라니..! 저는 누가 좀 제의해 줬으면 좋겠거든요. 돈을 기대해서는 아니고, 뭔가 출판사의 손길이 닿은 결과물을 가지고 싶어서요(그렇다고 먼저 출판사 찾아가기는 싫지만ㅎㅎ). 그나저나, 제가 읽기에는 찍어내기식 글이랑은 문투가 꽤나 다른 편이신데.. 언젠가 마음의 여유가 생기시면 한 번 정도는 더 고민해 보셔도 좋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스칩니다.

    자초지종이야 모르지만, 일터라는건 역시 이래저래 참 쉽지가 않은 곳인가봅니다. 그저 시간의 도움과 함께, 힘 내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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