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5-03] 여행지에서 쓰는 무라카미 독후감


무슨 글을 어떻게 써야할지 모르지만
키보드 자판을 두드리다보면
복잡한 감정과 기분이 정리되진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감이 생길때가 있다.

마침 휴가중에 블로그 포스팅을 하겠다며
용감하게 가져온 노트북이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나의 삶과 그 속에서의 관계는
"나"라는 지독히도 내성적이고
냉소적이면서도 자아중심적인 인물을 중심으로 출발한다.

한국에서 5시간 거리의 미얀마 여행지에서
큰 고민없이 그저 과거의 얇은 관계와 추억에 기대어,
SNS메신저로 연락하여 만나게 된 그 동생은,
9년 전에 있었던 우리의 모든 기억과
그 속의 인물들을 불러냈다.

(오늘 우리를 위해 퇴근 후 지친 몸을 이끌고
고맙게 우리를 만나러 와준 동생포함)

그 등장인물들은,
"살다보니 바빠서"
"그냥 마음에 안들어서"
"특별히 더 깊은 관계를 이어갈 이유를 못느껴서"
등등의 이유로 지난 9년간 따로 만나기는 커녕
연락을 지속하지도 못했다.

우리의 얇은 추억을 정당화하기 위해 소환된
한명 한명의 소식들에
 미안해지고 반갑고 그래서 불편하고, 즐거웠다.

사람의 관계라는 것은
서로의 다름을 알아가고 이해하는 과정일까 아니면,
함께한 시간과 흔적을 쌓아가는 과정인걸까

 무라카미는 지인인 다카하시의 
"난처한 세상에서 그냥 머리를 긁적이며 함께 난처해하는"
작품과 그의 삶에 대한 태도를
그저 공감할 수 밖에 없다고 했다.

작가는 독자를 위해 모든 정보를 수집해
총체적인 전경이 그려질수 있게해서
독자 스스로 판단할 수 있게 하여여하고
 그렇지 않으면 작가의 자격이 없다라는
이분법적 논리를 적용할수 없듯이,

사람의 관계라는 것도 그저,
머리를 긁적이게 하는 난처한 매 순간들을
공감하고 공유하는 찰나의 중첩인가보다.

나는 사회 초년생 시절에 토익이나 취업준비 때문에
가까운 이들의 힘든순간을 외면했던 경험을 들먹이며

인생에서 당장 중요하게 느껴지는 것들을위해
가장 중요한(주위 사람들) 것을 놓치지
마라는 충고를 하고 다녔다.

건방지게.

그들의 인생의 무게를 오롯히 함께 짊어질 각오가 아니면,
감히 어느 관계에도 쉽게 나서는건 무리라고 생각하면서,

12년이 지난 지금 난 여전히 이런저런 변명을 대며
주위사람들의 난처하고 머리 긁적이게 되는 순간들을
외면하고 있다.

나는 아마 방망이 깎는 노인이 되어
그저 내가 할수 있는 안정적인 영역 안에서
나, 당신 그 누구도 다치지 않게 살아가게 될 것이다.

나 스스로도 상처받지 않고 남들도 해칠수 없는
유리벽 안에서 그렇게 스스로 위안하고
적당히 살아갈것이다.

9년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씩씩한 모습으로
낯선  삶과 그 속에서의 관계에
온몸을 던져 살아가고 있는 동생을 보니 많이 창피해지고
한편으로는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싶다.

"고마워"

-양곤에서 두서없는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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