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4-08] 한옥의 고태미 인테리어(feat. 답십리의 미래)

 

선유재에 입주한지 만1년이 되어간다. 이집에서 사계절을 다 보내고나니 초기에 가졌던 한옥거주에 대한 막연했던 동경과 두려움은 옅어지고, 크고작은 불편함들도 어느새 익숙함이 되어간다. 사람이 이토록 적응의 동물이다.

우리부부는 본연의 직업과 어울리지않게 홈스타일링, 인테리어에 대한 관심이 지대하다. 평소에도 우리집 뿐만 아니라 인스타 혹은 지나가다 우연히 발견한 남의집들에 대해서도 자주 의견을 나눈다.

그리고 이제 1년 정도 살아보니 입주할때 했던 홈스타일링 조금 지겹기도하고 우리부부의 라이프스타일에 맞지않는 부분들이 눈에 밟히기 시작해서 조만간 안채(찐한옥)의 스타일링컨셉에 적지않은 변화를 줄 계획이다.

내가 가장 도전해보고싶은 컨셉은 '고태미(古態美) 인테리어'이다.

일반적으로 미술/공예에서 사조에 따라 크게 전통적이냐 현대적이냐를 분류하던데, 개인적으로 과거 어느 시대에나 현대의 관점에 봤을때 모던한 디자인과 장르는 존재했었다고 생각한다. 비록 옛스럽고 고풍스러운 컨셉의 인테리어라 하더라도 오브제의 선별, 서로간의 배치나 조합에 따라 충분히 요즘 세대에 어울리는 세련된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요즘 인테리어용 소품을 찾기 위해서 메이저옥션 프리뷰를 방문하거나, 답십리/인사동 골동품상점을 자주 드나들며 상인분들과 안면을 트고 있다. 

이분들은 고태미를 뽐내는 훌륭한 고미술품을 많이 보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옛방식대로 가게를 물건으로 가득 채워놓은 답답한 공간연출을 고수하는 등 시류를 제대로 읽지못한고 점차 도태되어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미술은 여러 원인으로 인해(참조링크: 허물어지는 고미술시장 ) 지난 십수년간 현대미술에 밀려 소비자에게 서서히 외면받고 있는 상황이다. 안타깝지만 상인들의 철학과 애정만으론 소비자의 발걸음을 되돌리기 쉽지않을것 같다.

일부 상인들은 하이테크(?) 채널인 유튜브에서 사설경매장을 운영하는 등 변화를 모색하고 있지만, 상인간 물건사고팔아주기가 대부분인 현재상황을 고려할때, 이마저도 돌파구가 되긴 어려울것같다. 아무리 수수료가 저렴하다고 하지만 메이저옥션(K옥션, 서울옥션, 아이옥션 등)을 두고 검증되지않은 사설경매장을 이용하는 일반소비자가 얼마나 되겠는가? 특히나 진품/가품의 여부가 상품가치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고미술품을!?

무엇보다 답십리가 외면받는 가장 큰 원인은 그들이 주장하는 이유(예>문화재의 엄격한 해외반출 통제)보다는, 그들 스스로 소중하고 아름답다고 말하는 고미술품들을 가장 아름답지 않은 방식으로 판매하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20년전에 유행하던 요가복 차림의 뱃살이 디룩디룩 나온 필라테스 강사에게 운동지도를 받고싶은 사람이 어디잇겟는가(물론 필라테스 본연의 목적이 외적아름다움은 아니지만.)

나는 답십리와 인사동이 일본의 골동품점을 배워야한다고 생각한다. 이들은 연출에 필요한 최소한의 상품들만 진열해놓고 고객과 상담하며 창고에서 하나씩 물건을 꺼내 보여준다고 한다. 답답하리만큼 창고에 들어가고 나오길 반복한다고 하는데, 일본사람들의 지독한 원칙주의를 한번이라도 경험해본사람이라면 쉽게 상상이 갈것이다. 일부 샵들은 인스타 피드에 어마무시한 공간연출 사진을 올리며 전세계에 많은 팔로워를 확보하고 있기도하다.




이미 한국에서도 일본 엔틱샵들을 벤치마킹하려는 시도가 관측되는데, (스케쥴이 맞지않아 아직 방문해보진 못했지만) 이들 중 연남동의 엔틱편집샵 '사유집'이 가장 눈에 띈다.




아쉽게도 국내외 현대공예품 위주로 판매하고 있지만 추구하는 컨셉과 연출은 일본의 그것과 매우 유사하다. 최근 인사동 Y화랑에서 뵌 내또래의 젊은 사장님(아마 경영승계중?)과 같이 소탈하면서도(반닫이 찾아서 인사동 헤매는 내가 불쌍하셧는지 아이옥션, 케이옥션이클리에서 합리적인 물건이 많이 나오니깐 거기 이용하면 된다고 꿀팁아닌 쿨팁 주심 ㅋㅋ) 요즘 취향을 이해하는 고미술전문가와 협업한다면 현대공예부터 우리의 전통공예까지 아우르는, 국내에서 독보적인 엔틱편집샵이 될 수 있지않을까 나혼자 상상해보았다. 고미술품은 수십만원짜리 토기부터 수억짜리 관요사기까지 가격 스펙트럼이 훨씬 넓어서 기대매출도 높아질 것이다.

앞선 사례들과 결은 달리하지만 연남동의 'findstuff'도 일본 현대공예품 위주의 세련된 작품들을 합리적인 가격에 판매하고 있다. 특히 일본 유리공예제품은 재고가 들어올때마다 우리집에 어울릴만한 것들이 있는 텐션을 잔뜩 높여 확인하고 있다.





내 인친중에 안경혜라는 분이 계신데, 가장 현대적인 주거형태인 아파트에 반닫이, 달항아리 등 전통요소들을 가미시켜 매우 이색적인 홈스타일링을 만들어가고 계신다. 아파트에 정고재(晶㚖在)라는 당호까지 붙여 마치 전통한옥같은 아이덴티티까지 부여한점이 흥미롭다.

과거엔 엔틱이라는 장르가 프랑스가 대표하는 유럽 엔틱스타일을 연상시켰다면 요즘에는 그 범위가 점차 넓어지고 있는 기분이다. 앞서 언급한 정고재와 같은 시도와 수요가 늘어난다면, 한국고미술, 즉 코리안엔틱도 점점 더 주목받지 않을까. 물론 답십리/인사동이 더 고상해진 소비자 취향에 대응하여 진정 '아름다운 물건을 아름답게 파는 공간'으로의 진화가 선행되어야 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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