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7-12] 한옥에서 두번째 여름을 맞이하며



과연 내가 블로그를 운영하는게 맞나싶을정도로 포스팅이 뜸하다. 그나마 한달에 1개정도는 꾸역꾸역 올리다가 마지막 포스팅 이후로 어느새 두달이 지났다. 내 블로그가 누군가에게 흥미거리가 된다면 그건 아마 "한옥주택에서 상업용목적이 아닌 오롯이 주거목적으로 살아가며 발생하는 현실적인 고민과 이벤트"가 아닐까한다. 

하지만 이 집에서 사계절을 보내며 어지간한 불편함들은 잔잔바리 수선들로 거의 다 해결이 되어 지금은 '안정기'에 접어든 기분이다. 그래서 블로그에 딱히 쓸내용도 없고 흥미성, 휘발성의 이벤트들은 그냥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편이 수월하다. 긴호흡을 가지고 생각의 정리가 필요한 글들만 블로그에 남길려고하니 자연스레 포스팅이 뜸해지고 있다. 뭐 내가 열렬한 구독자가 있는것도 아니고 댓가를 받고 쓰는것도 아니니 주기적글쓰기에 별다른 압박을 느끼지 않으려한다.

살아보니 삼청동(포함 북촌일대)은 참 장점이 많은 동네인것 같다. 광화문역 CBD가 지천이라 교통과 상업인프라이용이 편리하고, 건축규제로 인구밀도가 낮은데다 경복궁, 창덕궁, 북악산으로 둘러싸여 '주거의 쾌적함'이 보장된다. 무엇보다 서울에서 (추측) 가장 밀집도가 높은듯한 미술관, 갤러리 인프라로 인한 문화적 수혜는, 이사오기전엔 예상하지 못했던 큰 장점이다. (전시가 너무 많아서 선택하는데 고통이 있지만) 문화예술에 문외한이었던 우리부부가 조금씩 취향이란걸 만들어가고 있다.

근데 삼청동에 집을 구할때 반드시 한옥이어야하는가에 대해서는 물음표가 그려진다. 이건 집을 구할때 했던 고민이기도하다. (아주 개인주의적 관점에서) 반듯한 한옥의 외관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현대적주택보다 시간, 비용, 관심이 더 필요한데 어렵사리 외관을 유지한들 거의 내관만 보며 살아가는 거주자에게는 '심리적만족감'외에 딱히 보상이 없는 것 같다. 오히려 이웃들과 관광객들이 수혜를 입게 되는데, 서울시에서 지원하는 한옥수선비용도 지붕, 창호, 화방벽 등 외관의 가이드라인을 적용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우리집도 개량한옥의 외관을 가지고 있지만, 주위에 수선된 한옥들로 둘러싸여있어 내부에서 밖을 볼때 한옥마을의 정취가 부족함없이 느껴진다. 그렇다면 일반적인(=서울시가 제시하는 외관의) 한옥과 다른 외관을 유지하는 것은 동네의 정취를 해치는 행위인가? 아마 이 질문에 쉽게 답할수있는 사람은 없을것이다. 서울시가 정답지처럼 강요하는 한옥의 외관이 '건축과 디자인의 몰개성'을 야기하고, 이는 현대소비자의 수요와도 배치될 수 있다는 현장의 목소리가 꾸준히 제기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비록 상업용한옥이긴하지만) 익선동 한옥들은 당시 이게 무슨 한옥이야 라는 냉소적인 비판이 있을정도로 파격적인 외관을 시도했지만, 이는 시장의 트렌드와 소비자의 목소리를 반영한 결과로서 익선동이 서울의 랜드마크 상권으로 부상하는데 주요한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국적불명의 기괴한 모습의 한옥'과 '현대세대가 원하는 감각적이고 편리한 한옥'은 이처럼 각각 종이의 다른면처럼 결국 실체는 한몸이다 라는게 내생각이다. 우리는 강박적인 공적규제가 때론 풍선효과를 자극하고 심지어 날카로운 역습의 칼날이 되어 돌아온다는 것을 지금 이순간에도 목도하고 있지 않는가.

다시 일상적인 이야기로 돌아오면, 한옥은 매계절마다 손이간다. 지금처럼 여름 장마가 오기전엔 지붕에 깨진기와는 없는지, 마당 배수는 이상이 없는지 등을 점검해야하고 주택관리에 자신이없다면 전문가를 불러야하는데 당연히 비용이 발생한다. 한옥보수와 관련된 분들은 일단 절대적인 숫자가 적을뿐만아니라 장인과 업자의 경계선에 있는 분들이라 품삯도 저렴하지않다.

그래서 요즘 이런 생각을 한다. 한옥마을과 인근의 자연경관(인왕산, 북악산, 경복궁)을 충분히 감상할 수 있는 입지라면, 그리고 주위의 컨텍스트를 크게 해치지않는다면 굳이 한옥이 아니라도 괜찮지않을까. 기존 보존한옥을 때려부수고 양옥을 올리는것은 또다른 문제라 이는 차치하더라도 삼청동에 이미 존재하는 양옥주택, 빌라를 구입해서 현대적으로 대수선하는 것이 현실적 만족감은 더 크지않을까 라는.

지난주 목요일부터 장마가 시작됐다고 한다. 한옥에서 두번째 여름을 맞이하니 이런 요망한(?) 생각을 하게되는구나 흐흐. 부디 누구에게도 피해없이 이 축축한 시기가 무사히 지나기길.

댓글 7개:

  1. 처음으로 댓글 남겨요. 안녕하세요. 구범서입니다. 잘 지내시죠? 열렬한 구독자...까지는 아니지만 꾸준히 지켜보는(스토킹?) 구독자입니다. ㅎㅎㅎ

    답글삭제
    답글
    1. 앗 범서님 잘 지내시죠? 늘 잊지않고 방문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얼른 코로나가 끝나야 한옥대담회같은데서 또 뵐텐데요 ㅠㅠ 날씨가 많이 심술난것 같아요 건강 유의하세요!!

      삭제
  2. 작성자가 댓글을 삭제했습니다.

    답글삭제
  3. 안녕하세요, 한옥 이사를 고려중인 신혼부부입니다. 귀한 글 감사한 마음으로 보고있습니다. 정말 많은 도움이 됩니다. ^^

    답글삭제
    답글
    1. 도움되신다니 다행이네요 부디 맘에 쏙드는 집 구하시길 바랍니다

      삭제
  4. 양옥(?)에 살고있는 입장에서 말씀드리자면, 한옥의 중정이 가지는 프라이버시와 그 모호한 경계로 인한 접근성이 정말정말정말 그립답니다 ㅎㅎ 항상 블로그 잘 보고있습니다.

    답글삭제
    답글
    1. 다음에는 중정있는 양옥에도 한번 살아보고싶네요. 경험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

      삭제

Powered by Blogg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