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3-15] 근황, 그리고 길냥이들



기다리던 단비가 내렸다. 얼어붙은 땅이 녹고 삼청동에도 봄이 찾아왔다. 여러가지 이유로(추위,더위, 기와걱정, 나무걱정 등등) 아파트 살때와 달리 계절의 변화에 민감해지고 있다. 우리집은 사랑채, 안채, 서재가 구분되어있다. 마당을 통하지 않으면 왕래할수 없다. 본의아니게 하루에도 몇번씩 마당을 지나가야만 한다. 때론 비를 피해서, 어떨땐 내리는 눈을 맞으며 주방과 메인화장실이 있는 안채로 용무를 다녀와야한다. 이 얼마나 불편한 낭만인가.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 했나. 우리 부부는 이집에서 매우 안녕하다. 너른 창 넘어 시시각각 변하는 하늘과 인왕, 백악을 바라보며 사는 호사를 누리는데, 아쉬운 점이 있다 한들 감수해야겠다. 인간이 안녕하지 못할 이유는 스스로 생산해내는 조급함과 열등감 때문이지 환경탓만은 아닐것이다.

오랜만에 블로그를 켠 이유는 단독주택살이와 밀접하게 맞닿아있는 길냥이들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기 위함이다.

과거에 글을 올렸던것처럼 우리부부는 길냥이들에 대해 그리 우호적인 사람들이 아니었다.  동물을 포함, 타 생명체에 무관심한 나는 한번씩 집에 찾아오는 길냥이들을 애써 무시하곤했다. 반면 와이프는 털이 달리고 사족보행하는 모든 짐승들을 무서워한다.(눈치없게 "그럼 뱀은?" 이라고 묻는 사람이 있다;;;) 집 안밖에서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길냥이들때문에 기겁하고 그런 와이프에 길냥이도 기겁하는.... 코미디같은 장면들이 반복되었다. 화단에 길냥이 응가와 음식물쓰레기봉투 테러로 인한 수고는 덤이었다. 와이프가 너무 무서우니 이사가면 안되냐고 한적도 있었다;;;

그렇게 동네 길냥이들과 거리두기를 하던 우리가.. 이들을 조금씩 다른 시선으로 보기 시작했다. 높은 지능과 귀여운 외모를 가진 이 작은 생명체들에게 식사와 물을 챙겨주기 시작하면서 조금씩 가까워졌다. 이들의 행동언어를 공부하다가 알고리즘에 의해 자연스럽게 이들이 야생생태계에서 천적이 없는 최고포식자인것도 알게되었다. 생존을 위해서가 아닌 재미삼아 작은 짐승들을 사냥하는 야성으로 인해 많은 소형 조류, 설치류, 양서류 등이 멸종되었다는 해외 연구도 있었다. 

길냥이들이 야생생태계를 교란하고 있는 증거는 명백했다. 나처럼 길냥이들에게 급식을 하는 것은 곧 하위 생태계 박멸을 가속화하는 행위인 것이다. 길냥이들은 암컷의 경우 6개월 수컷은 8개월 이후에 성성숙이 완료되고 1년에 최대 2-3회 1회 출산에 4-5마리의 새끼를 낳는다고한다. 물가의 배스나 황소개구리가 귀엽다며 먹이를 주는 것과 크게 다를것이 없다는 표현이 꽤 와닿는다. 삼청공원의 멧토끼, 맹꽁이, 참새들이 정말로 이들에 의해 사라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길냥이들은 배스와 황소개구리와 동일하게 해로운 존재인가? 정말?

이 질문의 대답은 사람들이 대상을 얼마나 인격화하느냐에 달려있다고 생각한다. 지구상에서 가장 위험한 교란종은 당연 '인간'일텐데, 만약 당신이 인간의 개체를 조절해야한다고 말하는 순간 사람들은 당신을 히틀러나 타노스같은 사이코패스처럼 쳐다볼것이다. 길냥이들을 보살피는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이다. 이들에게 고양이란 인간과 거의 동격의 생명체이며 공생해야할 가족이자 친구인것이다. 커뮤니티상에서 이들의 거친반응이 잘 이해되지 않는다면 누군가가 당신의 친구나 가족의 개체수를 조절해야한다고 주장하는 것을 상상해보라.

"지구를 살려야한다" "길냥이를 살려야한다" "길냥이들에 의해 죽어가는 새들을 살려야한다" 어쩌면 이 모든 주장들이 인간중심적 사고에 기인한다고 생각한다. 지구나 고양이나 새들이나 각자의 주어진 조건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나갈 뿐인다. 못난 인간이 우월함에 도취되어 이래라 저래라 하는것이다. (지구, 고양이, 참새: "잉간, 니가 뭔데?") 사실 이들중 가장 외롭고 아픈것은 단연 인간이다. 지구상 어떤 종이 스스로 목숨을 포기하나. 그것도 창창한 어린나이에. 풍요속의 빈곤이라는 말이 유행한적이 있다. 우리는 수많은 카톡방으로 타인과 소통하지만 정작 다른 생명과의 순수한 교감에 목말라있다. 고양이를 구하자 하는 사람들은 어쩌면 본인 스스로를 구하고 있는건지도 모르겠다.

길고양이 문제에 정답은 없다. 누군가는 갓태어난 어린짐승의 생식기를 잘라낸뒤 꿰매는게 최선이라고도 한다.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아픈 생각이다. 나부터 인간중심적 사고를 버리고 선택적 관용을 피하려고 노력하자. 결과는 자연이 답해주겠지.


댓글 3개:



  1. 1) '생태계'란 연쇄효과로 작동하며 인간이 예측하기 어려운 복잡하고도 민감한 자연시스템이다(예: 길고양이 증가로 하위 종들이 줄어들지만 하하위종들은 늘어난다)

    2) 인간의 존재 자체가 생태계에 가장 큰 교란요소이다

    3) 2)의 이유로 인간이 길냥이들이 늘어나니 참새가 줄어드니 판단하는 것은 오만하고 모순적인 태도이다

    4) 인간은 생태계의 주인이 아닌 참여자로서 최대한 모든 생물에 차등없는 관용으로 대해야 한다

    5) 생물간(인간-짐승) 순수한 교감의 차이에 따른 생태계 변화 또한 생태계의 일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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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간만의 글도 사진도 반갑네요!

    너무나도 어려운 문제이기에 정답을 찾기 어려운거 아닐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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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타노스 너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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