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4-28] 20대와 코스모스


20대들이 많이 힘들다고 한다. 

매일 '라떼'를 외치는 나같은 꼰대들에게 그들의 하소연이 즉시 와닿지 않았다. 라떼엔 IMF며 미국발 금융위기며 늘 경제적으로 혼란스러웠고, 각종 공모전과 자격증 압박에 뭔 거지같은 합숙면접같은걸 통과해 어렵게 취직했기 때문이다. 입사를 해도 끝난게 아니다. 자정을 넘어 퇴근하는 건 예사고 뭔놈의 회식은 3,4차까지 반강제적으로 가야해서 입사후 몇년동안은 거의 간을 술에 담근채 회사를 다녔던것 같다. 지금 사회 전반은 그때보다 훨씬 투명하고 민주적으로 진화했다. 기회도 많아진것 같다. 그들의 토로가 투정같이 느껴졌던것도 사실이다.


돌이켜보면, 그래도 라떼는 인생의 큰 이정표가 같은게 정해져 있었던 것 같다. 군대를 다녀오면 한동안 토익, 학점에 충실하여 좋은 기업에 취업하고, 결혼하고, 진급하고, 아기를 갖고, 육아를 하고, 집을 사고 등등등. 반면 지금은 옵션이 너무 많아졌다. 꼭 취업해야해? 결혼해야해? 2세 가져야해? 예전엔 너무도 당연한 것들이 지금은 '선택사항'이 되어버렸다. 어떤 업종의 기업에 가야하는지 고민하는 것만 해도 머리가 터질것 같았는데, 이제는 창업, 인플루언서, 전업투자자 등 내 스마트폰 안 어플리케이션처럼 많은 선택지가 생겼고 심지어 지금 이순간에도 새롭게 생산되고 있다.

설상가상 더 많아진 판단에 대한 조언을 구할 곳도 많아졌다. 과거엔 먼저 취업하거나 결혼한 선배, 부모님들의 조언에 의존할 수 밖에 없었다. 가까운 지인들의 "내가 해봐서 아는데..."식의 충고는 초년생들에게 실로 지대한 영향력이었다. 간혹 무속인들도 중요한 조언창구로 작동했다.

지금은 어떤가? 구글이나 유튜브에 어마무시한 정보들이 먹기좋은 형태로 이쁘게 가공되어있다. 이제 스스로 검색해서 스스로 판단해야하는 세상인 것이다. 부모나 선배들의 조언은 어느새 한물간 구닥다리 정보가 되어버렸다.

(당연한 말이지만) 중요한 사실은, 삶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결정적인 판단은 구글이나 유튜브가 대신 해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들의 선행적 경험들이 모두 동일한 환경과 변수에서 이뤄진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결국 최종 결단은 본인의 인생철학과 통찰력이 바탕되어야한다. 회사를 계속 다니는게 맞는지? 적성을 살려 창업을 해야하는지? 플랫폼 크리에이터가 되는건 어떤지?의 판단은 오롯이 본인의 몫이 된다.

요약하자면, 나는 오늘날의 20대가 아래의 요인으로 혼란에 빠져있다고 생각한다.

1)성취의 방법이 다양해짐: 예전에는 좋은 회사에 취업해서 승진하는 것이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성취였다. 지금은 코인투자로, 주식투자로, 부동산투자로, 스타트업으로, 인플루언서로, 너무너무너무 많은 성취방법이 생겼다. 굳이 회사에서 시스템의 부속품으로서 본인을 소진시켜가며 일할 필요가 줄어든 것이다. (물론 그들이 기대하는 대부분의 경제적 성취는 허구에 가깝다)

2)지성을 갖춘 멘토를 찾기어려움: 사회적으로 미숙할수 밖에 없는 나이에 고려해야할 요소들이 쏟아지는데, 이런 판단의 홍수 속에선 '좋은 멘토'의 존재가 절실하다. 하지만 주위에 지성을 갖춘 조력자를 찾기보기란 어렵다. 30-40대 선배들은 20대만큼 트렌드에 민감하지 않은데다가 그들도 1)의 이유로 비슷한 혼란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내코가 석자). 까딱하다간 이번 상승장을 놓칠수도 있다는 조급한과 열등감에 주식투자, 부동산투자 책을 열심히 읽고, 무자격자의 강의를 쫒아다니는데 그들의 귀한 여유시간을 소진하고있다. (기성세대들의 기준엔) 배부른 고민만 하는 새파란 20대들에게 도움을 줄 여유도, 상응하는 지성도 갖추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3)훌륭한 멘토를 찾더라도 그들이 20대를 적극적으로 이끌지 않음: 좋은 피력자-조력자 관계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단단한 연대감이 밑바탕 되어야한다. (이건 순전히 내 뇌피셜) 기본적으로 20대들은 다양한 채널을 통한 정보획득이 몸에 베어있기 때문에 좋은 조력자의 조언이라 하더라도 플랫폼 정보와 동일한 수준의 가중치를 두는것 같다. 실제로 오프라인 멘토보다 유튜버가 딜리버리 면에서 훨씬 유려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화법만 번지르한 유튜버를 걸러내는 선구안이 필요한데, 20대에 그런게 생길리가 만무하다) 피력자는 조력자의 조언에 온전히 몰입하지 못하고(엉? 내가 아는 유튜버랑 의견이 좀 다르시네?) 조력자의 입장에서는 자기완성을 위한 수행과 각고의 시행착오를 거쳐 깨달은 귀중한 인사이트를 "언제나 접근이 가능한 유튜버의 조언", 혹은 그 이하로 상대가 받아들이는 것을 보면 집중도가 옅어질수 밖에 없다. 반신반의하는 상대에게 밀도있는 가르침을 주기란 쉽지 않은 일인 것이다. 예수님이나 석가모니같은 신의 사명을 대신 수행하는 성인이 아닌 이상은.

너무 많은 선택지와 조력자의 부재로 20대들은 혼란스럽다. 당장 눈앞의 번뇌를 회피하기위해 휩쓸리듯 사는 후배들도 종종 눈에 띈다. 그들을 볼때마다 안쓰러운 마음이 든다. 이 또한 그들이 짊어져야할 시대적 아픔이자 통과의례일지도 모르겠다. 과연 언제쯤 이땅의 20대들에게도 코스모스가 찾아올런지. 그것이 실제로 가능한 일이긴 한걸까.



댓글 2개:

  1. 좋은 멘토를 만난 덕분에 지금까지(물론 대단히 이룬것은 없지만) 올 수있었던것같아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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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저는 학교 교육도 큰 영향 주었다고 생각해요. 사회가 교육의 속도를 따라오지 못해서요. 진보적으로 교육 받았는데 사회에 나와 보수적인 조직 문화에 적응하려니. 배워온거랑 영 딴판인 세상인거죠... 그러니 혼란스럽고 어렵게 취업을 해도 아닌것같으니 퇴사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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