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6-03] 정의란 무엇인가

이 곳이 점점 철학블로그가 되어가고 있다. 공간이 의식을 지배한다는 말을 절절하게 체감하고 있다. 한옥 생활을 처음 시작할즈음 처마의 곡선과 기하학적이인 창호 문살의 시각적인 아름다움에 심취했었다면, 지금은 인간, 삶과 죽음, 지구와 생명 등 조금 더 내밀한 주제에 대해서 사유하게 된다. 정말 나도 모르게 그렇게 되어가고 있다.


오늘 아침 출근길에 한 의사의 범죄행위와 법원의 관대한 처분에 대해 성토하는 내용의 뉴스를 봤다. 10년전 중년의 의사가 동료들과 술을 마시다 지인의 부탁으로 다량의 마약성 의약품을 혼합하여 주사했고, 그 지인(여성)은 곧 쇼크사했다는 내용이다. 설상가상 의사는 지인의 시신을 한강에 유기하는 파렴치한 짓까지 저질렀다. 법원은 이 의사에게 징역 1년 6개월을 판결했고 의사면허도 곧 취소되었다. 

이후 의사면허 재발급을 위해 보건복지부와의 5년간의 법정다툼을 벌였고 법원은 "현행 의료법상 취소기간을 채우고(3년) 반성하는 모습을 보인다며 면허를 재발급하라"고 의사의 손을 들어주었다. 미디어는 이런 인면수심의 의사는 사회에서 영원히 매장시켜야한다는 논조를 쏟아내고 그러한 여론을 대변하듯 국회에서도 강력범죄자는 의사면허를 영구취소하는 법안을 만들고 있다고 한다.

여기까지만 들었을때 우리 사회가 악인을 처벌하고 사회적/경제적으로 도태시키는 제도를 만들고 있으므로 사회정의에 부합한다고 느끼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나는 문득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만약 이 의사라는 직업을 다른 직업으로 대입시켜도 같은 의식의 결과로 이어질까?

가난한 청소용역노동자가 동료와 막걸리집에서 한잔하며 서로의 거친 삶을 위로하고 있다. 갑자기 지인으로부터 연락이 와서 청소차의 크레인 부분에 한번만 태워달라고 부탁하는 상황을 가정해보자. 몇번 거절하다가 간곡한 부탁에 어쩔수없이 지인을 크레인 위에 태웠다. 청소부는 술기운에 실수로 크레인 조작바를 놓쳤고 지인은 수미터 남짓한 곳에서 떨어져 사망한다. 놀란 청소부는 당황하여 어쩔줄 모르다가 얼떨결에 한강변에 시신을 유기하기에 이른다. 이 청소부는 재판과정에서 당시 음주로 인한 심신미약이며, 살인에 고의가 없었고, 다른 동종범죄전력도 없으며, 유족과 합의하였고, 범죄에 대해 크게 늬우치고 있다는 점을 인정받았다. 하지만 징역을 피할순 없었고 결국 청소부라는 직업도 잃게되었다. 이후 10년동안 이 청소부는 제대로 된 직업을 구할수없어 일용직을 전전하다 결국 청소부 모집에 다시 지원하였으나, 10년전 사건으로 인해 재취업을 거절당하는 상황에 처했다. 이 청소부에 내려진 사회적 재단은 온당한가?

물론 의사라는 직업이 솔선수범을 보여야할 사회적 엘리트층으로 인식되고(...음...아직도?) 사람의 생명을 다루며 신체에 즉시 위해를 가할수 있다는 면에서 청소용역 직업과는 차이가 있다. 하지만 다른 요소들은 어떤가. 공공성을 가진 직업, 업무상 불법행위와 과실치사, 재취업 불가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이라는 면에서 거의 유사하다. 

나는 가족/지인중에 의사도 없고 개인적으로 그 직업에 특별히 호감을 가질만한 경험도 없다. 다만 우리가 부자와 빈자에 쉽게 선악의 프레임을 대입시키고, 일상에서도 이런 집단의식을 거부감없이 수용하고 있는것 같은 찜찜한 기분이 들었다. 개인적으로 불의보다 무서운 것이 선택적 정의, 주관적 정의라고 믿고 있기에.

덧붙여 요즘 국회의 실적내기 위주의 입법행태에도 우려가 생긴다. 현업에서 일하다보면 최근 너무많은 규제와 상호모순적인 법들로 인해서 업무가 지연되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 유권자들에게 "법을 많이 만드는 것"="국회의원이 열심히 일하는것"이라는 어필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입법 홍수의 시대에 살고 있다. 포퓰리즘 입법이 난무하고 국가가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에 점점 관대해지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치열한 생업으로 깊게 고민하는 습관을 잃어버리고 아토피같은 디지털자극, 플랫폼상의 비전문가의 컨텐츠에 의존하는 것 같아서.. 그리고 사회 구성원으로서 가져야할 보편적인 지성을 상실하는 것 같아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부자와 빈자의 선악프레임을 본인 스스로에게 씌운 최악의 케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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