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16] 인생영화 ‘추락의 해부‘ 감상평



오랜만에  마음을 사정없이 흔드는 영화를 보고왔다. 내 마음속 이터널 선샤인화양연화의 지위를 이을만하다.


프랑스 외딴 마을에 현대적인 주택을 지어 살고 있는 지식인 부부와 어린 시각장애 아들의 이야기이다아내의 불쾌한 감정이 드러나는 인터뷰와 남편의 추락씬으로부터 영화는 출발한다.


작품의 제목은 ‘추락의 해부지만남편의 죽음이 실족사인지자살인지살인사건인지를 파헤치는 과정에서 부부의 관계가 낱낱이 해부된다.


영화는 죽음의 진실 보다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수 있는 평범한 가정의 행복과 위태로움을 밝혀내는데 집중한다제목에서의 ‘추락 남편의 물리적 추락인 동시에 욕망의 추락삶의 추락아버지로서 그리고 남편으로서 짊어진 무게감으로부터의 해방이라는 중의를 담고 있는듯하다.


용의자로 지목된 아내의 변론과정 시퀀스가 독특하고 판사마저 농을 던지는 프랑스의 캐주얼한 법정 분위기도 흥미로웠다.


독일인 아내는 강인하며 이성적이고 지적이다. 하지만 드라이하다못해 서늘하다는 느낌이  정도로 감정이 통제되어있다반대로 프랑스인 남편은 지적이고 위트있고 가정에 헌신적이나 다소 충동적이고 불안정한 캐릭터라는 설정이다 (각각 서양인들의 게르만,갈리아 민족에 대한 편견을 투영한듯)


아들의 실명사고로 인해 부부는  충격을 받고 이후 갈등의 골이 깊어졌음이 드러난다아내는 법정에서 타살을 암시하는 불리한 증언과 진술이 나올때마다 “그것은 우리 관계의 아주 일부분뿐이라며 담담하게 반론한다. 무심한 목소리 위로 슬픔과 연약함이 세어나오는 산드라 휠러의 연기가 가히 압권이다.

시각장애로 자연스럽게 청각이 발달했을 아들조차 부부의 갈등을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사려깊은 부부였다. 어쩌면 이 둘은 대부분의 일상에서 원만하게 지냈을 것이다. 하지만 남편이 죽었다. 유력한 용의자인 아내의 살해동기를 입증하기위해 두사람만 알아야할 내밀한 갈등이 수많은 배심원단과 방청객들의 돋보기 앞에서 증폭되고 확대재생산된다.


갈등은 어느 관계에서나 존재하고 일상적이며 때론 불가항력적이다. 하지만 갈등은 삶을 송두리채 집어삼킬 수있는 힘을 가지고있다영화에서 그러한 것처럼감독의 절제된 연출로 등장인물간 관계와 갈등을  3자로서 편견없이 바라볼  있었다.


매크로 프로그램을 돌려 용아맥에서 2 보는 것이 유행이고 챌린지가 되어버린 세상이다동시에 50석 남짓한 독립영화관에서 관람객들이 숨죽여 배우들의 다이얼로그에 집중하는 경험도 공존한다배급사는 대형 스크린과 입체적 사운드가 영화관을 가는 이유의 전부는 아니라고 외치는  같다관객들이 마치 한팀을 이뤄  scene 함께 추론하고 퍼즐을 풀어나가는 듯한 묘한 경험을 했다이런 소규모극장에서만 가능한 특별하고 귀한 체험이다.


실은 요즘 영상 공부를 많이 하다보니 예전엔 안보였을 기술적인 아쉬움들이 거슬려 영화 초반에 온전히 집중하기 어려웠다저조도 환경에서 자글자글 노이즈를 볼때마다 “도대체  영화는 어떤 센서의 카메라를 쓴거지?” 실내에서 창문 넘어로 보이는 아름다운 설경이 과노출될때면 “설마 실내에서 조명조차 안친건가?”라는 주제넘은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다하지만 배우들의 탄탄한 연기와 감독의 연출에 몰입하다보니 노이즈고 과노출이고 어느새 시야에서 사라졌다역시 영화에서 중요한 것은 그런 지엽적인(?) 기교들이 아니라 등장인물과 교감할  있는 스토리텔링이었다고.


특히 마지막 영화 크레딧이 올라갈때 Le chien : Miguel   줄을 차지 하고있는 것을 보고 흠칫했다만약 프랑스어를 배우지 않았다면 감독이 열연을 펼친  강아지 배우(특히 아스프린 구토 씬은… ㄷㄷㄷ)를 크레딧에서 가장 우대했다는 감동적인 의도도 몰랐겠지?


해부의 추락  영화인생에 길이길이 남을 작품이다.(하마터면 크레딧 올라갈  혼자 기립박수칠뻔시네큐브는 이런 작품성 있는 영화 위주로 상영한다고 한다집근처에 이런 훌륭한 곳이 있엇다니앞으로 애용할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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