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5-19] 땅에 쓰는 시



추락의해부 이후 광화문 시네큐브에서 발굴한 또 다른 명작, 땅에 쓰는 시 후기

허름한 복장으로 쪼그려앉아 단독주택 뜰을 가꾸는 모습, 거친 경상도 방언, 본인의 감정에 치우치는 모습이 여느 지방도시 촌로의 모습과 다름없다.

근데 이분이 우리부부가 좋아하는 선유도공원을 포함, 설화수의 집, 호암미술관 등 유명 건축물의 정원을 설계하신분이라니…

”자연이 곧 교과서“라는 믿음으로 산과 들을 다니며 공부한다는 어르신. 영화를 보고 ”한국적인 정원“이라는 것은 자연을 존중하고, (이웃나라의 그것처럼) 강박적이지 않으며, 일견 흐트러진 모습이지만 결코 초라하지 않은 정신의 결정체라는 것을 깨달았다. “(동료의 추상적인 의견에) 머라카노”, “(자신이 감리하지 않으면) 뭐 이상하게 해놓겠지 모여가지고 회의같은거나 하고”, “어릴적 할아버지 과수원에서 꽃잎이 흩날리는 풍경이 가슴 사무치도록 그립다” 의 말씀들을 비추어볼 때 이 분은 굉장히 경험적이고 천재적 직관에 의한 작업을 하시는 것 같다. 특히, 초기 디자인 시 정원 평면도에 파스텔의 색깔과 농도로 조경을 설계하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악’ 소리가 나왔다. 이런 분의 기술을 배우려면 옆에서 “콩나물 물 주듯” 반복 관찰하는 수 밖에 없다. 왜냐하면 이 분의 작업이라는 것은 결국 자연을 모방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자연을 생산하는 기술을 어떻게 인간의 언어로 전수할 수 있겠는가. 여든이 넘는 연세에도 기력이 팔팔하신 걸 넘어 그 왜소한 몸으로 여전히 현업에서 존재감을 드러내고 계신다. 정영선 조경가, 이 분은 자연을 사랑하다못해 마침내 자연의 일부가 되어버리신건 아닐런지. 날씨 좋은 주말이 오면 선유도공원에 가서 이 분의 마음이 닿았을 흙과 풀들을 천천히 음미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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